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한다. 인생이 드라마라면 그 내용은 다름아닌 만남과 이별로 점철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나고, 노아와 앨리가 만나고, 신문기자가 왕녀를 만나고……이처럼 피어나는 인생의 시작이 만남이고 그 마무리가 이별이다. 영화를 보면 남녀 주인공이 거리나 지하철에서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들은 역사를 창조할 기회를 아쉽게도 놓친 것이다. 사건의 부재는 언제나 아쉬운 법. 어제의 만남이 바로 내일의 역사가 아닌가. 이런 만남은 필연적 우연이란 말로 흔히 치장되기 쉬운데, 그 때 그 자리에 두 사람이 조우했다는 것은 우연과 필연 중에서 어느 쪽일까. 우연이란 없다. 이 책 《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는 역사적 실존인물의 우연한 만남으로 빚어진 대하드라마적 풍경들을 보여준다. 무수한 역사적 그림들이 만화경처럼 내 눈앞에 다가왔다 재빨리 사라진다. 만화경은 기원전 540년경 스파르타 300 용사들로부터 악명 높은 조지 부시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역사적 조우의 명장면 100선을 소개한다. 그러니까 어림잡아 200여명의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파노라마다. 영국작가 에드윈 무어Edwin Moore가 역사적 만남에 적용한 원칙은 크게 세가지. 첫째는 당사자들이 모두 유명인사이고, 둘째는 우연히 잠깐 마주치고, 셋째는 그런 짧은 만남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Six Degrees of Kevin Bacon 」이란 게임이 있다. 한 명의 배우를 제시한다면 알음알음 6명 이내에 모두 할리우드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에 연결된다는 얘기다. 가령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시어라면, 그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메릴 스트립과 함께 공연했고, 메릴 스트립은 〈리버 와일드〉에서 케빈 베이컨과 함께 출연했다. 이 법칙을 18세기 게몽주의 사상가에게 적용해 본다면, 케빈 베이컨의 이름은 제임스 보스웰James Boswell로 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 보스웰은 당대 계몽주의사상계의 감초인 셈이다. 책의 등장인물 중에서 새뮤얼 존슨, 루소, 루소의 연인, 볼테르, 데이비드 흄, 플로라 맥도널드와 앨런 맥도널드, 존 윌크스, 조셉 브랜트9명이 모두 보스웰과 만난 적이 있다. 1763년 5월 당시22세인 보스웰은 런던의 한 서점에서 53세의 시인 새뮤얼 존슨을 만난다. 이후 영국 전기문학의 백미 《새뮤얼 존슨의 생애》를 쓸 정도로 존슨의 절친한 지인이 된다. 존슨은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 이야기》의 저자로 낯설지 않다. 1776년 보스웰의 중재로 존슨은 급진적인 휘그당원 존 윌크스 John Wilkes와 저녁을 함께 먹는다. 존슨은 열렬한 노예제도 반대론자였다. 그런데 존 윌크스는 공교롭게도 링컨의 암살범과 같은 이름이다.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는 열렬한 노예제도 옹호론자다. 책을 읽고 나니 초등학교 5학년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세계상식백과》란 책을 펼쳐 들고 읽었을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그래, 그 느낌이다. 상상력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는 그런 책. 무수한 역사 속의 인물들과 그들의 무용담이 짧지만 인상깊게 무대 위에 등장했다 사라진다. 《세계상식백과》를 좋아한 사람이라면 이 책 또한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372쪽엔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저항가요 〈이상한 열매〉의 가사가 나온다. 노래를 들으며 음미해 보시길.
어제의 만남이 내일의 역사가 되는 순간,찰나의 마주침이 영원의 기록으로 탈바꿈하는 순간,바로 그 순간, 역사의 시곗바늘이 세계사의 페이지를 수놓았다고대 이래 세계 역사를 수놓은 운명적 만남은 물론 엉뚱한 만남, 재미있는 만남, 별 볼일 없는 만남 등 온갖 만남들을 집대성한 리스트 북(list book)이다. 저자는 특정 시간, 특정 장소, 특정 인물의 조우라는 좁은 프레임에 들어온 역사의 단편만을 제시하면서,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유명인사들의 우연한 만남들을 탐구한다.찰리 채플린은 런던의 빈민가에서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영화 「모던 타임스」의 영감을 얻었고, 사회주의 문학의 대가 고리키와 마크 트웨인이 뉴욕 한복판에서 손을 잡고 볼셰비키 공작금을 모금했다. 미국에 간 신출내기 비틀스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를 찾아갔다가 박대를 당하지만, 대신 함께 즉흥 연주를 한다. 윈스턴 처칠이 미국 순회강연을 갔다가 역시 순회강연을 하고 있는 미국 소설가 윈스턴 처칠을 만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 사자왕 리처드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 단테와 베아트리체, 대통령 케네디와 소년 클린턴의 만남 등 제법 알려진 일화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저 말초적 호기심만 자극할 뿐인 야사나 야담 류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1부 고대·중세의 만남들
001 키루스 대왕, 스파르타 사절단을 무시하다
002 알렉산드로스를 만난 디오게네스, 대왕을 두려워하지 않다
003 알렉산드로스 대왕, ‘인도의 벌거벗은 철학자들’을 만나다
004 아소카 대왕, 니그로다 스님을 만난 후 평화주의자가 되다
005 갈리아의 베르킨게토릭스, 카이사르에게 항복하다
006 막시무스 황제, 기독교의 이단자 프리스킬리안을 죽이다
007 교황 레오 1세, 훈족의 아틸라 왕을 설득하다
008 성인 콜룸바, 픽트족의 왕 브리디우스에게 설교하다
009 맥베스, 교황을 만나러 순례의 길을 가다
010 참회왕 에드워드, 정복왕 윌리엄을 만나다
011 사자왕 리처드, 살라딘의 형제를 만나다
012 단테,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2부 16~17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만남들
013 영국의 헨리 8세, 프랑스의 프란시스 1세와 씨름하다
014 마르틴 루터와 프리드리히 3세, 보름스 회의에서 만나다
015 츠빙글리와 루터, 성만찬에 대해서 토론하다
016 칼뱅,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하기 직전의 세르베투스와 토론하다
017 연금술사 존 디, 존 필포트를 신문하다
018 엘리자베스 1세, 여해적 그레이스 오말리를 만나다
019 제임스 1세, 테러범 가이 포크스를 심문하다
020 포카혼타스, 제임스 1세를 별 볼일 없게 생각하다
021 조지 폭스, 올리버 크롬웰을 울리다
022 왕관을 훔친 블러드, 런던탑에서 찰스 2세를 만나다
023 아우랑제브 황제, 시크교 현자 테그 바하두르를 처형하다
3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만남들
024 보니 프린스 찰리, 컬로든 전투 후 로바트 경을 만나다
025 플로라 맥도널드, 보니 프린스 찰리의 탈출을 돕다
026 음악의 거장 바흐, 프리드리히 대제를 위해 곡을 쓰다
027 카사노바, 왕의 연인 마담 퐁파두르를 만나다
028 전기 작가 보스웰, 볼테르를 침대에서 끌어내다
029 에라스무스 다윈, 꽃으로 루소를 유혹하다
030 존슨과 보스웰, 플로라 맥도널드를 찾아가다
031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매혹되다
032 조셉 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 산소에 대해서 토론하다
033 소년 로베스피에르, 루이 16세를 향해 환영사를 하다
034 존슨 박사, 존 윌크스와 저녁을 먹다
035 패트릭 퍼거슨, 자신의 신제품 소총으로 조지 워싱턴을 죽이려다 말다
036 사디즘의 원조 마르키 드 사드, 미라보 백작을 욕하다
037 벤저민 프랭클린, 다쉬코바 공작부인을 만나다
038 월터 스콧, 시인 로버트 번스의 눈에 반하다
039 노예제 폐지론자 올라우다 에퀴아노, 샬롯 왕비에게 탄원서를 내다
040 모호크족 추장 브랜트, 조지 워싱턴을 만나다
041 샬롯 코르데, 욕실에서 마라를 암살하다
042 나폴레옹, 토머스 페인에게 영국을 침공할 방법을 묻다
4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만남들
043 웰링턴 공작, 넬슨 제독의 이중성을 보다
044 흑인 권투선수 몰리노, ‘검은 다이아몬드’ 톰 크립과 싸우다
045 베토벤, 괴테를 질책하다
046 해리엇 윌슨, 바이런 경에게 작업을 걸다
047 제인 오스틴, 리전트 왕자의 사서를 찾아가다
048 벤저민 헤이든, ‘불멸의 만찬’을 열다
049 산마르틴, 볼리바르에게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 자리를 양보하다
050 슈베르트, 죽음이 임박한 베토벤을 찾아가다
051 몬테피오리와 압둘메시드,‘다마스쿠스 사태’를 논하다
052 에드거 앨런 포, 디킨스에게 작품집 출판을 부탁하다
053 변호사 존 랭, 커튼 사이로 락슈미바이 공주와 대면하다
054 의사 제임스 배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야단치다
055 로버트 브라우닝, 영매 대니얼 던글러스 홈을 무시하다
056 흑인 간호사 메리 시콜, 나이팅게일에게 잠자리를 얻다
057 무용수 롤라 몬테스, 헨리 시캠프를 채찍으로 때리려 하다
058 탐험가 리처드 버튼과 목사 브리검 영, 아내들에 대해 농담하다
059 배우 존 윌크스 부스, 에이브러햄 링컨과 만나기를 거부하다
060 혁명가 가리발디, 시인 테니슨을 위해 나무를 심다
061 바그너, 비스마르크에게 자금을 얻지 못하다
062 로버트 잉거솔, 벤허 작가 류 월리스에게 영감을 주다
063 류 월리스, 빌리 더 키드에게 사면을 약속하다
064 오스카 와일드, 월트 휘트먼에게 키스를 받다
065 아파치 추장 제로니모, 마일스 장군에게 항복하다
066 빅토리아 여왕, 인디언 주술사 ‘검은 고라니’를 만나다
067 넬리 블라이, 쥘 베른의 마음을 사로잡다
068 조셉 콘래드와 로저 케이스먼트, 같은 방을 쓰다
5부 1차 세계대전에서 2차 세계대전까지의 만남들
069 영국의 처칠, 미국의 처칠과 친구가 되다
070 마크 트웨인, 러시아 혁명을 위해 고리키를 돕다
071 작곡가 아놀드 백스, 독립?동가 패트릭 피어스를 감동시키다
072 청년 프린시프, 페르디난드 대공을 저격!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다
073 혁명가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사진을 찍다
074 파니 카플란, 레닌을 저격하다
075 레닌, 버트런드 러셀을 실망시키다
076 W. E. 존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면접하다
077 작가 시드니 시프, 당대 문화의 거장들을 한자리에 모으다
078 토머스 하디, 에드워드 공을 즐겁게 해주다
079 아인슈타인, 프로이트를 찾아가다
080 간디와 찰리 채플린, 런던의 빈민가에서 만나다
081 주세페 장가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쏘다
082 아돌프 히틀러,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에게 손을 흔들다
083 윈저 공 에드워드, 히틀러를 만나 나치식 인사를 하다
084 살바도르 달리,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그리다
085 아벨 미어로폴, 빌리 홀리데이에게 이상한 열매를 불러주다
086 프랑코와 히틀러, 서로 상의하다
087 SF 작가 론 허버드, 알레이스터 크롤리와 만나다
6부 1946년 이후 현대의 만남들
088 비트겐슈타인, 칼 포퍼 면전에 부지깽이를 휘두르다
089 조지 폼비의 아내 베릴, 대니얼 말란 남아공 수상을 면박하다
090 메리 매카시, 릴리언 헬먼을 맹비난하다
091 작가 에릭 뉴비와 탐험가 윌프레드 세시저, 아프간에서 조우하다
092 루이 브뉘엘, 알렉 기네스에게 주연을 맡아달라고 하다
093 피델 카스트로, 헤밍웨이 낚시대회에서 우승하다
094 무용가 조세핀 베이커, 마틴 루터 킹 편에 서다
095 빌 클린턴,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하다
096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와 즉흥 연주를 하다
097 알렉 기네스, ‘M’과 점심을 먹다
098 재키 케네디,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만나다
099 쿠르트 발트하임, BBC 기자 존 심슨을 강타하다
100 이슬람 지도자 사미 알 아리안, 조지 부시에게 지지를 약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