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삶을 충분히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이 가장 푸르게 빛났던 시기가 언제일까를 돌이켜보면 아마도 대학을 갓 입학한신입생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앞으로 더 짙은 푸름으로 빛나는 시기를 경험하기를 소망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 실현가능성에 큰 무게를 둘 수 없는 소망일 뿐이다.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헛된 것을 기대할만큼 이젠 정열적이지도, 낙천적이지도, 무모하지도 않으니까.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기대하지도 도전하지도 못하는 것이야말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고질병이 아닐까싶다. 이른바 성인병이랄까.
대학 신입생 시절이 가장 푸릇할 수 있는 이유는 사방으로 열린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기호와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 미지의 어른 세계에 합법적으로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다는 기대, 스스로가 주어진 시간을 마음대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기쁨, 멋인 사랑을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레임 등이 바로 그것. 현실의 쓴 맛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마구 부풀려진 그런 기대들은 사람을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고 심장박동을 약 20% 정도증대시켜 두근거림을 느끼게 한다. 아마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두근거림.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의 2요인 이론에 의하면 사랑을 느끼는 감정은 두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 일어나는 심장박동수의 증가, 즉 두근거림 이다. 그러나 이 한가지 만으로는 첫눈에 반한다는 사랑의 현상을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없다. 어두운 밤길에서 누군가 자신의 뒤를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비슷한 두근거림은 느껴지니까. 그래서 조합을 이루는 나머지 하나의 요소인 심리적 꼬리표 가 필요하다. 즉 자신이 느끼는 두근거림의 대상을 선별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른바 좋은 감정, 즉 호감 이랄까.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는 흔하다. 이성에게 호감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해버리면 세상은 바람과 불륜으로 넘쳐날 것이며,동성에게느끼는 호감까지를 포함하면 세상의 반이 동성애자가 되어버릴지도모른다. 그래서 사랑의 감정엔 이 둘 중 하나가 아닌 둘의 교집합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조건이 달성된 상태를 사랑의 감정이라 부른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대학 신입생 시절처럼 적게는 하루의 삼분의 일에서 많게는 절반 이상이두근거림으로 가득 찬 상태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 이 조건에 호감이 더해지는 경우는 무척 흔하게 발생할 수 있다. 두근거림은 신체적 각성이라는 생리적 현상이므로 자의적 판단이 개입해 본질을 흐릴 가능성이 적지만,심리적 꼬리표는 유추의 영역이므로 얼마든지 오인이나 변형이 가능하다. 그래서 자신의 전반적 정황에 기인한 두근거림의 의미를 호감을 느끼는 특정 대상에게 몰아주고는 그 대상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생각해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많은 이들이 이 시절 사랑을 경험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영화 역시 최근 개봉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건축학개론>이나 꽤 오래전에 상영되었음에도 햇살이 따스해지는 4월만되면 인구에 회자되는 이와이 슈운지의 <4월 이야기>처럼 대학 신입생 시절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그 시설의 사랑 경험이 이유야 어찌되었건 흔하니 만큼, 이 시절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 역시 많은 것이 어찌보면 당연. 이런 멜로 영화가 어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경험의 유사성에서 시작해야하니까.
늘 자신의 오른쪽 허리에서 떨어나자기 않는 피부병 때문에 틈나는 대로 약을 발라야 하는 마코토(타마키 히로시, 노대메 칸타빌레의 치아키 선배다. 근데 이 영화 속 이미지는 많이 다름)는 늘 만성 비염으로 냄새를 거의 맞지 못하는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와 대학 입학 후 바로 친해진다. 그러나, 마코토에 대해 이성적 호감을 키워가는 시즈루와는 달리 마코토는 아직 젓니조차 빠지지 않은 초등 모드의 시즈루가 좀처럼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마코토가 호감을 느끼는 대상은, 마치 결혼이 인생의 목표인양 꿈같은 결혼식만을 꿈꾸며 수업시간마다 웨딩드레스 화보만 뒤적이는 속물근성의, 그러나 외모에서는 성숙한 아름다움이 흘러넘치는 미유키(쿠로키 메이사)다.
예전부터 사진을 즐겨 찍어온 마코토는 자신을 따라온 시즈루와 함께 멋진 호수와 숲이 드리워진, 흔히 볼 수 없는 예쁜 새가 한마리 살고있는 외부인 출입금지의 사유지를 발견하고 종종 함께 사진 찍기를 즐긴다. 마코토와 오래 지내고픈 의도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시즈루는 의외로 사진찍기에 상당한 소질을 드러내고 마코토는 시즈루와 함께 사진전 공모를 준비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시즈루는 마코토에게 자신의 작품을 <첫 키스>로 정했다며 , 생일 선물 겸 키스의 상대역을 해달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부탁을 하게 된다.
영화는 6년의 시간을 오가며 전개된다. 어라.. 그러고보니 첫 키스도 그렇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이 <건축학개론>하고 비슷하다. 그러나 완전 다른 이야기.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남주인공 마코토가 <건축학개론>의 승민보다 훨씬 더 행복한 넘이다. 엔딩의 해피 여부와 상관없이. 아무튼 예쁜 영화다. 영화 속 풍경이나 사진들도 꽤 볼만한데, 사진이 중요한 소재로 차용된 만큼 꽤나 신경을 쓴 이유인 듯 싶다. 남녀주인공 캐릭터가 딱히 내 타입은 아니었지만, 영화 자체는 DVD를 지른게 딱히 후회될 정도로 어긋난 취향은 아니란 느낌. 아픔과 상처를 억지로 예쁘게 감싸 포장하거나, 스토리 자체를 유치하게 전락시키면서 주인공들의 인생을 해피엔딩으로 귀결시키는 일본 특유의 정서에 기반한 억지스러움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좋았다. 스토리가 상당히 가물해질 때까진 다시 꺼내볼 일은 없겠지 싶지만..
화면비율 : Anamorphic Widescreen 1.85:1
오디오 : Dolby Digital 5.1 Dolby Digital 2.0
지역코드 : 3(Asia ETC)
더빙 : 일어
자막 : 일어,한국어
[특이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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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키 히로시
미야자키 아오이
쿠로키 메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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